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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협곡위의 도시 론다

안타루시아의 꽃이라고 일컫는 이름다운 마을 론다는 과달레빈 강이 만든 타호 협곡위에 해발 780m고지대에 세워진 절벽위의 이도시는 험준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이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론다를 상징하는 누에보 다리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입니다. 1735년에 세워진 원래다리가 무너진 후 당시 아라곤 지역의 천재 건축가 마르틴 데 알데후엘라가 1751년 새로 짓기 시작해  40년이지난 1793년 완공 했는데 비에호,아랍다리가 완공후 가장 늦게 완공되어 3개다리중 가장 새로운(누에보)다리라고 명명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버스는 세비아교외를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론다까지 2시간 소요

세비아 교외 로타리 분수

세비아를 떠나 론다 로 가면서 야채밭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시가지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농촌 마을

올리브 농장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올리브 밭

포도

산악지대로  론다 산맥

 앞쪽엔  금작화 와 멀리 잘생긴 바위산

바위산을 지나면서

올리브 나무들

상수리 나무들

고속도로 옆 초원지대

노오란 금작화랑 멀리 상수리 나무

세비야에서 출발한지 2시간만에 론다에 도착 했습니다

론다의 은총이 가득한 성모마리아 성당( Iglesia Neustra Senora de la Merced Ronda)에스파냐인의 감성을 느껴지는 이름이네요

           알라메다 타호공원 안에 그때 최고의 영예를 누린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 동상(근대 투우 창시자 프란시스코 로메로 손자) 200주년 기념으로 1954년 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알라메다 타호공원

알라메다 타호공원 끝부분이 깍아지른 절벽아래 예쁜집과 길들

절벽아래 멀리 올리브밭이랑 그림같은 산들

더 멀리 절벽아래 구릉지대

넝쿨나무의 노란꽃

1785년에 만든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투우장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하얀색 둥근 외벽과 노란색 지붕이 매우 인상적이다. 내부는 바로크 풍으로 2층 계단 하나 하나에 타일로 투우와 관련된 그림을 그려 놓았다. 투우를 상징하는 붉은 천과 소를 모는 케이프를 처음 도입한 근대투우의 창시자 프란시스코 로메로와 론다가 배출한 스타급 투우사들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매년 9월에는 고야시대 전통의상을 입은 고야식 투우가 열린다.


공원 입구의 론다의 절벽표지위에 헤밍웨이 부조가  헤밍웨이가 이곳을 머물며 산책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투우장 앞 광장

세계적인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 부조,  헤밍웨이는<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말했을 정도 에스파냐에서 전경이 아름답기도 유명 한 곳이다. 헤밍웨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곳 론다에서 집필 하였다고 한다.

협곡 아래

정자에서 바라본 파라도르와 건너 신시가지  18세기 시청사 건물을 개조한 파라도르 (호텔)는 누에보다리 바로 옆에 있어 비경을 감상하기에는 그만이다.  고풍스러운 외관과는 달리 내부 인테리어는 현대적으로 깨끗하고 예쁘다고 하네요 ! 발코니를 통해서 관광객들이 누에보 다리까지 구경할 수 있도록 순환 통로로 되어 있습니다 .

절벽아래 선인장

광장에는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여기 저기에서  사진을 찍고 있네요

정자 앞에서 셀카봉을 들고 있는 중국인들

협곡 위와 아래

절벽위 정자옆 전망대에서 파라도르 를 배경으로정자에서 파라도르 로 가면서

파라도르 발코니에서 지금  지나온 정자쪽으로 바라보면서

발코니 끝자락(가각)에서 협곡 건너편 남쪽을 바라 보면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 하는  누에보 다리  절벽아래에는 꽃이 피었네요

누에보 다리 야간 조명 라이트

누에보 다리  스페인 내전때 포로를 떨어뜨려 죽이기도 했고 다리 중간 아취가 있는 공간은 한때 감옥으로 사용 했었다는 슬픈 역사를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이다리 전경을 찍어려면  1박 하면서 절벽(협곡)아래  내려가  포토 존에서 촬영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 시간이 없네요

에스파냐 광장 파라도르 드 론다 앞 기념품 가게

노천 카페    론다는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무어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그들은 론다 협곡위에 하계 별장궁전이며 목욕탕등을 만들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었지만  1485년 5월 20일 로마 카돌릭군주인페르난도와 이사벨라가 정복 하여 되 찾였다.이곳의 포도 곡물생산의 중심지이고 고급가죽이며,밀가루,브렌디,옷 ,초코릿을 생산,교역한다. 인구는 약 4만여명

론다의 콘도?,아파트

오후5시40분 우리는 타리파 항을 향해 출발 론다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

노오란 금작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네요

파아란 하늘과 론다산맥의능선그리고 금작화

버스차창에 비친 목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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